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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7급 민간경력자/2015년 인책형

[15민(인)-19해] 2015년 5급/7급 민간경력자(민경채) PSAT 상황판단 인책형 19번 해설

by Topgemstone

문제

 

다음 글을 근거로 판단할 때 옳지 않은 것은?

 

  1678년 영의정 허적(許積)의 제의로 상평통보(常平通寶) 주조발행되어 널리 유통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적으로 조정이 운영하는 수공업이 쇠퇴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수공업이 발전함으로써 국내 시장의 상품교류가 확대되고, 1645년 회령 지방을 시초로 국경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화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임진왜란 이후 국가 재정이 궁핍하였으나 재정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재원 마련의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678년에 발행된 상평통보는 초주단자전(初鑄單字錢)이라 불리는데, 상평통보 1()의 중량은 12푼이고 화폐 가치는 은 1냥을 기준으로 400문으로 정하였으며 쌀 1되가 4문이었다.
  1679년 조정은 상평통보의 규격을 변경하였다. 초주단자전을 대신하여 당이전(當二錢) 또는 절이전(折二錢)이라는 대형전을 주조발행하였는데, 중량은 25푼이었고 은 1냥에 대한 공인 교환율도 100문으로 변경하였다.
  1678년부터 1680년까지 상평통보 주조발행량은 약 6관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이전의 화폐 가치는 처음에는 제대로 유지되었지만 조정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을 증대하면서 1689년에 이르러서는 은 1냥이 당이전 400800문이 될 정도로 그 가치가 폭락하였다. 1681년부터 1689년까지의 상평통보 주조발행량은 약 17만 관이었다.
  1752년에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중앙의 3개 군사 부서와 지방의 통영에서도 중형상평통보(中型常平通寶)주조발행하도록 하였다. 중형상평통보의 액면 가치는 당이전과 동일하지만 중량이 약 17(1757년에는 1 2)으로 당이전보다 줄어들고 크기도 축소되었다.

상평통보 묶음단위: 1101001,000

중량단위: 1101001,000=1/16

 

초주단자전, 당이전, 중형상평통보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당이전이다.

은을 기준으로 환산할 때 상평통보의 가치는 경우에 따라 1/4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1678년부터 1689년까지 주조발행된 상평통보는 약 23,000만 문으로 추정된다.

1678년을 기준으로 은 1근은 같은 해에 주조발행된 상평통보 4,600문의 가치를 가진다.

상품교류 및 무역 활성화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상 필요에 따라 상평통보가 주조·발행되었다.

 

해설
▷ 정답  ④

①. (O)

초주단자전의 중량은 1전 2푼, 당이전의 중량은 2전 5푼, 중형 상평통보의 중량은 1전 7푼이므로 당이전이 가장 무겁다.

 

②. (O)

당이전은 은 1냥에 대한 공인 교환율이 100문이었으나 가치가 하락하면서 은 1냥이 당이전 400~800문이 될 정도였으므로 가치가 4분의 1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O)

1678년부터 1680년까지 상평통보 주조ㆍ발행량은 약 6만 관이고, 1681년부터 1689년까지의 상평통보 주조ㆍ발행량은 약 17만 관이었으므로 23만 관 즉, 2억 3천만 문이다.

 

④. (X)

은 1근은 은 16냥과 같다. 1678년에 은 1냥에 대해 상평통보 400문이 같은 가치를 지녔으므로 은 1근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 상평통보는 6,400문이다.

 

⑤. (O) 

문단 1에 따르면 옳은 설명이다. (Not Only A But Als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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