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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7급 민간경력자/2015년 인책형

[15민(인)-2해] 2015년 5급/7급 민간경력자(민경채) PSAT 상황판단 인책형 2번 해설

by Topgemstone

문제

 

다음 글을 근거로 판단할 때, <보기>에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조선시대 복식은 신분과 직업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었다. 상민들은 흰색 두루마기만 입을 수 있었던 데 비해 중인들은 청색 도포를 입고 다녔다. 조선시대 백관들의 공복(公服) 규정에 따르면, 중인의 경우 정3품은 홍포(紅袍)에 복두(幞頭)를 쓰고, 협지금(劦枝金)띠를 두르고 흑피화(黑皮靴) 신었다. 4품 이하는 청포(靑袍)에 흑각(黑角)띠를 둘렀고, 7품 이하는 녹포(綠袍)에 흑의화(黑衣靴)를 신었다.
  여자들의 복장은 남편의 벼슬이나 본가의 신분에 따라 달랐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서울의 높은 양반집 여자들은 외출할 때 남자들과 내외하기 위해 장옷을 썼는데 중인 이하의 여자들은 장옷 대신 치마를 썼다. 또 양반집 여자들은 치마를 왼쪽으로 여며 입었는데 상민이 그렇게 입으면 망신을 당하고 쫓겨났다고 한다.
  조선시대 공복에는 아청(鴉靑), 초록, 목홍(木紅) 등의 색을 사용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1470년대에는 경공장에서 청색 물을 들이는 장인이 30여 명에 달할 만큼 청색 염색이 활발했다. 남색 역시 많이 사용되었다. 「임원십육지」 따르면 67월에 쪽잎을 따서 만든 즙으로 남색 물을 들였다. 쪽잎으로 만든 남색 염료는 햇빛에 강해 색이 잘 변하지 않는 성질이 있어서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염료는 조선 초기까지는 사용이 드물었으나 조선 중기에 염료의 으뜸으로 등장했다가 합성염료의 출현으로 다시 왕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보 기>

. 조선 후기에 중인 여자들은 외출할 때 장옷을 썼다.
. 1470년대에 청색 염색이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경국대전󰡕에 남아 있다.
. 조선시대 정3품에 해당하는 중인들은 규정에 따라 청포에 흑각띠를 두르고 흑피화를 신었다.
. 조선에서는 합성염료의 출현 이후에도 초봄에 쪽잎을 따서 만든 남색 염료가 합성염료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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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②

ㄱ. (X) 문단2)

조선 후기에 중인 이하 여자들은 외출시 장옷 대신 치마를 썼다.

 

ㄴ. (O) 문단3)

경국대전에 따르면 1470년대에는 경공장에서 청색 물을 들이는 장인이 30여 명에 달할 만큼 청색 염색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ㄷ. (X) 문단1)

중인의 경우 정3품은 홍포에 복두를 쓰고, 협지금띠를 두르고 흑피화를 신었다. 청포에 흑각띠를 두른 것은 4품 이하다.

 

ㄹ. (X) 문단3)

쪽잎을 따서 만든 남색 염료는 조건 중기 염료의 으뜸으로 사용되다가 합성염료의 출현으로 왕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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