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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동진시대의 문인 곽복이 쓴 「산해경」이라는 지리서에 있다. 이 책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중국의 고전 「고금기」에도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 나라로 표기하였으며, 고려 예종도 고려를 근화향이라 지칭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민중은 무궁화를 왕실의 꽃이 아닌 민중의 꽃으로 인식하였다.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후에도 무궁화에 대한 민중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일제는 이러한 민중의 정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무궁화를 말살하려 했다. 예를 들어 무궁화를 캐 온 학생에게 상을 주고, 무궁화를 캐낸 자리에는 벚꽃을 심었다. 또한 무궁화를 가까이에서 보면 눈에 핏발이 서고 만지면 부스럼이 생긴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무궁화를 보면 침을 뱉고 멀리 돌아가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핍박 속에서도 일부 단체나 학교는 무궁화를 겨레의 상징물로 사용하였다. 1937년 7월 31일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개최된 시국강연회에 참석한 조선소년군은 무궁화가 새겨진 스카프를 착용했다. 일제는 이것을 저항으로 해석하여 스카프를 압수하고 조선소년군 간부를 구금했다. 또한, 서울중앙학교는 모자에 무궁화를 새겼다가 문제가 되어 무궁화를 월계수로 대체하여야 했다. |
① 일제는 무궁화 말살을 위해 학생들이 무궁화를 캐도록 유도했다.
② 민중의 무궁화에 대한 사랑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후 자연히 시들해졌다.
③ 최치원의 국서는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신라를 근화향으로 표기했다.
④ 일제의 무궁화 말살 정책으로 무궁화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모든 단체와 학교는 벚꽃을 겨레의 상징물로 사용했다.
⑤ 조선소년군은 시국강연회에 참석할 때 착용한 스카프에 무궁화가 새겨진 것이 문제가 되자 무궁화를 월계수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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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7급 민간경력자/2015년 인책형] - [15민(인)-11해] 2015년 5급/7급 민간경력자(민경채) PSAT 상황판단 인책형 11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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